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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화, 만화이야기/영화감상

[주관적 영화 보기] - 학생이나 선생이나 우린 모두 낙오자이다.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by 매드포지 2024.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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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을 했다고?? 개꿀!

연초부터 좋은 영화들이 쏟아지기 하더니 4월에 다다르자 조금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 덕(?)에 이렇게 리뷰를 남길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하니씩 써보고 있는 중이다. 종종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리뷰를 남기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각을 잡고 리뷰를 쓰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영화 한 편을 보는 편인 나로서는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로 리뷰를 남기고 싶은 영화가 정말 많이 있었지만 선뜻 쓰지 못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이 리뷰가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져서 블로그를 내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로 생각하며 하나씩 써보고 있다. 이렇게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된 영화가 이번에 이야기해 볼 '바튼 아카데미'이다. 이 영화는 2023년 크리스마스쯤 미국에서 개봉했지만 한국에서는 2024년 2월이 거의 다 지난 시점에서야 개봉했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서 굉장히 기대가 되었지만 한국 관객 특성상 인기가 없기 때문에 영화관 개봉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늦게나마 개봉해서 볼 수 있었다.

그래 봐야 전체 관객수가 5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봤을 정도로 입소문이 났던 영화기도 하다. 많이들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영화다.' '크리스마스에 걸맞은 가족 영화다.'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고서는 따듯함보다... 가슴 저미는 느낌의 성장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다치고 날개가 꺾여 웅크린 우리는 낙오자(Holdovers)이다.

바튼 아카데미의 원제는 The Holdovers이다. 이 단어는 낙오자, 남겨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영화의 캐릭터들이 크리스마스 휴일 시즌을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남아 보내는 것을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메인 캐릭터들 각각의 현재 처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메인 캐릭터 중 고대 역사 선생님인 폴 허넘(Paul Hunham)은 사시에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학생, 교사들이 모두 싫어하는 외톨이다. 하지만 그 속사정은 하버드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해 그것에 항쟁하다 결국 쫓겨나 학자로서 뜻을 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다닌 고등학교로 돌아와 교사가 되었다.

다른 메인 캐릭터로 문제 학생인 앵거스 털리(Angus Tully)는 꽤나 똑똑한 학생이지만 늘 어딘가 꼬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속사정이 있는데 정신병이 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불안해하고 있으며 아버지를 버리고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비행(卑行)으로 표출하며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교의 식당에서 일하는 메리 램(Mary Lamb)은 어딘가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70년대에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했던 인종차별을 애써 무시하고 아들을 좋은 교육을 시켰지만 결국 전쟁으로 아들마저 잃은 채 학교에 남아 있다.

메인 캐릭터 3명은 이러한 각자의 이유로 인해 인생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표출할 수 있는 불만, 불안, 그리고 불평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감 없이 드러내며 스스로를 가두어 다시 자신을 낙오자로 만들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지 않고 그 상처와 흉터로 인해서 사람들을 밀어내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한다.

이런 캐릭터 설정은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감독의 전매특허라고 볼 수 있다.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어바웃 슈미트(2002), 디센던트(2011), 다운사이징(2017)에서 때로는 남자, 노년, 중년, 부부 등 주로 정체되어 있던 삶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변화되는 과정을 정말 디테일하고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영화 The Holdovers에서도 앞서 이야기한 3명의 캐릭터들을 통해 각각의 삶에서 겪은 고통들로 인해 정체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며 관객들에게 '혹시 당신도 그렇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따듯한 영화다'라고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요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도태된 인간 군상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각각의 상처를 보고 크리스마스 휴일을 같이 보내며 가족 같은 분위기로 영화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면밀히 살펴보면 정말 이 3명의 캐릭터들은 서로의 상처를 한 번이라도 보듬어 주거나 같이 고민해 주거나 처리해주지 않는다. 서로 있는 자리에서 그저 지켜보고 '이해'해줄 뿐 더 이상의 제스처는 하지 않는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들 대부분에서 그렇듯이 이 영화도 어떤 인생의 결착이나 혹은 해결을 확실하게 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이 영화 캐릭터들의 변화의 계기와 시작에서 잠시 엿보는 느낌이고 그 이후에 어떤 사람은 망할 수도 어떤 사람은 성공할 수도 있는 열린 결말로써 영화가 대부분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난 '따듯한 가족 영화'라는 이야기에는 정말 동의할 수 없다.

이 영화는 각각의 인생에서 잠시 같이 있으며 위안을 받았던 '동료'로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따듯한 영화가 포옹(Hug)으로서 아픔을 보듬어 준다면 이 영화는 악수(Handshake)로서 서로의 아픔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이자 선생, 선생이자 학생인 우리들

하수와 고수에 대한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 '하수는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도 배우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만 고수는 아랫사람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점을 찾는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교사로서 학교에 있었을 때 영어 교사로서의 스킬을 제외하고 배운 것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이 특정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비행 청소년에게도 배울 점이 있고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다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며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일 때문에 억울해하고 오해가 생기고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인생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장을 해야 하지만 그것을 통해 낙오자가 될 수 있다.

영화에서 교사인 폴 허넘은 이런 낙오자 생활을 대학원생일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30여 년을 이어왔다. 이제는 낙오자가 아닌 삶에 대하여 더 이상 상상도 꿈도 잘 꾸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살다 죽어가겠지'라는 마인드이다. 이 영화에서 폴 허넘은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 나오는 주인공 교수의 느낌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둘의 차이점은 그대로 안주하느냐 아니면 어떤 계기를 통해 앞으로 전진하냐의 차이이다. 스토너는 그대로 안주해 버린다. 학과장에 밀렸을 때도, 모욕을 받을 때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는 순간까지도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뭐라 하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폴 허넘은 자신이 보고 느낀 자신의 제자 앵거스를 통해 그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던지며 안주에서 벗어나 버린다.

그리고 누군가는 폴보다 더 일찍 낙오자 인생을 청산할 계기가 주어진다. 그것이 바로 학생인 앵거스이다. 앞으로 아픔을 이겨낼 계기가 생겼고 학교에서 퇴학당할 상황에서 폴의 희생으로 인해 구사일생했다. 또한 자신을 위해 주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을 자신으로 이해해 주는 폴을 보면서 낙오자에서 벗어나는 삶을 배운다. 앵거스는 폴보다는 30여 년은 빠르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역할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선생, 누군가에게는 학생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방관자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했던 고수와 하수의 차이처럼 어떤 사람들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는 행위는 우리가 우리를 던지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대로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대로이고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도 어떤 결말도 보여주지 않는다. 학교에 남게 된 앵거스는 무사히 졸업해서 좋은 대학을 갈 것인가? 학교를 떠난 폴은 앞으로 원하던 대로 고대사 논문을 완성시킬 것인가? 여전히 식당에서 일하는 메리는 아들을 잃은 아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매일을 살며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런 글을 쓸까? 이런 기획을 해볼까? 이런 회의를 해볼까? 하지만 그것이 옳은지 틀렸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그 선택으로 인해 낙오자 혹은 전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는 말 것이다. 하지만 낙오자가 되었다고 절망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영화에서 폴과 앵거스처럼 어떤 계기가 올 수도 있으니까.


제가 보고, 볼만했던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포스팅으로 남깁니다.
만일 오타나 해석 실수 등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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